눈꽃세상의 일상

♧ 여행 이야기/여행 이야기

위천의 거북바위와 요수정 / 거창 수승대

눈꽃세상 2024. 8. 2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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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거북바위

2024년 8월 13일

 

 

 

 

날이 너무 더우니 안내요원들이 물을 뿌리고 있어요.

 

 

 

 

수승대관광지 주차장

3시간까지는 무료주차입니다.

 

 

 

 

 

수승대 종합안내도.

물놀이장에 현수교가 걸쳐 있고,

성령산 산책로에 출렁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물놀이장 건너편에 야영장이 있는데,

차량으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리어카에 짐을 실어

다리로 사용되는 댐둑길로 운반해야 한답니다.

 

 

 

너무 무더워,

e마트25에 딸린 카페에서 팥빙수를 주문했어요.

 

 

 

 

세익스피어 상

수승대 축제극장에서 국제연극제가 열리는 것과 관계가 있겠지만

뭔가 어색함을 지울수가 없고요.

 

 

 

 

화장실과 가우라꽃(바늘꽃)밭

 

 

 

 

수승대교 현수교.

 

 

 

 

암반 아래 깊은 곳은 물놀이 금지.

 

 

 

 

'요수 신선생 장수지지'  일주문을 지나

구연서원으로 향합니다.

 

 

 

 

400년 노거수 은행나무

 

 

 

 

영조16년(1740년)에 세운

구산서원 문루 '관수루'

 

 

 

 

구산서원 마당

배롱나무꽃이 활짝폈네요

 

 

 

 

산고수장비.

석곡성선생유적비.

황천신선생유적비.

야천신선생유적비 등이 세워져 있어요.

 

 

 

 

구연서원 강당

 

 

 

 

구연서원 사당인 '구연사' 내삼문(경 문)

 

 

 

 

구연서원 앞 솔섬

 

 

 

 

관서루가 있는 암반에 뿌리내린 커다란 참나무가  참 신기합니다.

 

 

 

 

거창 수승대(搜勝臺)

국가지정 명승 제 53 호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번지 일원

 

수승대는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이름난

'안의삼동'의 하나인 원학동에 위치한 명승지이다

화강암 암반과 함께 아름다운 숲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전국의 시인 묵객들이 무릉도원으로 여기며 즐겨 찾았던 곳이다.

이곳은 신라.백제 간 국경 지대였던 당시,

사신이 떠날 적에 안위를 걱정하며, 

근심(愁)으로 보냈기(送) 때문에 '수송대'라 하였다고 전한다.

햔편으로는 이 일대의 빼어난 경관이 사람들의 근심을 잊게 하기 때문에

수송대라 불리었다는 설도 있다.

이후 1543년(중종38), 퇴계 이황 선생이 이웃 영승마을에 내방하였다가

수송대를 방문하고자 하였으나, 급한 정무로 정나면서 

그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 여겨 '수승대'로 바꾸고

오언율시를 남김으로써  '수승대'로 불리게 되었다.

거북바위 벽면에는 퇴계 이황(1501~1570)의 시,

갈천 임훈(1500~1584)과 요수 신권(1501~1573)의 화답시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이름난 학자들이 수승대의 경치와 감회를 노래한 시 및 

25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수승대는 거대한 거북바위와, 구연, 섬솔을 중심으로 연반석, 장주갑, 돌개구멍 등

자연경물 및 구연서원 관수루, 요수정, 함양재 등의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우리나라 전통 명승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정부는 이 일대를 2008년 12월 26일 국가지정 명승 제 53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안내문>

 

 

 

 

영귀정(泳帰亭)? 

 

 

 

 

거북바위 측면.

요즘 같으면 다 붙잡아 갔을 듯 !

환경훼손으로~ 

 

사실은 이렇습니다.

 

#1 '세월이 흘러 거창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요수 신권과 갈천 임훈의 후손들은

거북바위 위에 서로 자기 문중의 조상을 찬탄하는 시를 새겨

거북바위에 난립하게 된다'

 

#2  '이 바위에 왜 이리 글씨가 많은가?

원래 갈천 임훈 가문이 요수 신권 가문보다 백년 앞서 수송대 주변의 황산마을에

입향하여 살면서 서로 사돈관계를 맺고 지냈다.

그런 연유로 이황의 보내준 시와 이에 화답한 요수 신권의 시,

처남 갈천 임훈의 시가 함께 거북바위에 새겨졌다.

그러나 이들의 시가 탐승객 사이에 화제가 되자,

후손인 거창 신씨와 은진 임씨 문중은 서로 수승대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다툼이 생겼다.

임씨 문중이 '갈천 선생이 지팡이 짚고 나막신 끌고 노닐던 곳'

(葛川杖履之所)이라는 명문을 근거로 새기고,

신씨 문중은 '요수 선생이 몸을 감추고 마음을 닦은 곳'

(樂水愼先生藏修洞)이라는 글을 새겨 대응하였다.

16세기 중엽 다툼이 시작된 이래 1866년 송사에서

안의 현감이 신씨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두 문중의 분쟁은 목숨을 버리고 재산을 탕진하면서도 

구한말까지 그치지 않았다.

1929년 4월 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 지원에

임씨 문중이 수승대 소유권 확인소송을 다시 제기 하였다.

2년 후인 1931년 3월 판결 결과 임씨 문중의 청구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됨으로써

신씨 문중이 수승대를 계속 관리하게 되었다

이로써 400년에 걸친 수승대 소유권 분쟁은 일단락 되었다.

 

 

 

 

 

귀연교 돌다리를 향해 내려갑니다.

 

 

 

 

너럭바위 암반에서 바라본 상류쪽 출렁다리

뒤쪽 커다란 산은 백두대간 줄기인 대봉은 아닐지~

 

 

 

 

 

보이는 암반에 자연 그대로의 벼루도 있고 (연반석),

술항아리도 있고 (장주갑)~

 

 

 

거북바위 암반에서 바라본 현수교와 물놀이장.

 

 

 

 

요수정으로 가는 길에 비스듬히 서있는 노송이 고개를 숙이라 합니다.

하심송(下心松)

 

 

 

 

요수정

 

 

 

 

요수정에서 바라본 거북바위

 

 

 

 

 

출렁다리 풍년이라서,

요즘 이런 다리는 깜도 안되는 것 같아요.

현수교를 건너갑니다.

 

 

 

 

물놀이를 하는 모습도 보이고,

뒤로 보이는 능선은 아홉산에서 건흥산 거열산성으로 이어집니다.

아홉산과 건흥산 사이에 선화공주가 호동왕자를 만나기 위해 넘었다는

취우령(795m)이 있지요

 

 

 

 

 

거창으로 나오는 길에 잠시 멈춤.

건흥산 거열산성 입구 풍경.

데크길을 따라 물레방아 옆을 지나 오르면 거열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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