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영월 장릉. 사적 제196호.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선왕릉40기)
성인 입장료 2천원.
관람시간 09시~ 18시.
휴무일 없음.
장릉 올라가는 길.
조선 제 6 대 임금 단종(1441~1457) 의 묘역
장릉.
조선 왕릉은 현재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도성인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4~40킬로미터에 조영되었다. 장릉은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군에 있다. 이곳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오지로 면적은 약 353만 7,000제곱미터나 된다.
단종은 문종과 현덕왕후 권 씨의 아들로, 태어난 다음 날 어머니를 여의었다. 10세 때인 1450년 아버지인 문종의 즉위로 왕세자로 책봉되었는데, 문종이 왕이 된 지 2년 3개월 만에 사망하는 바람에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한국사 전체에서 가장 비극적인 왕이 된다.
즉위한 지 1년 반 만에 계유정난이 일어나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되었다. 그러다 단종의 최후가 찾아온 이유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아들, 세조의 동생)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사사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종은 노산군에서 다시 서인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면서 사건이 종결되는 듯했으나 세조의 신하들은 벌떼같이 일어나 단종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면 차후에도 사육신, 금성대군과 같은 복위 사건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금부도사 왕방연은 사약을 가지고 단종이 있는 영월 청령포로 갔다.
하지만 왕방연은 차마 말을 하지 못했고 교생2) 복득이 단종의 뒤에서 활시위로 목을 졸라 죽였다. 그러나 실록에 따르면 왕방연이 영월에 도착하자 단종은 목을 매 자진(自盡)했다고 되어 있다. 사후 처리도 비참해 야사에 따르면 시신이 청령포 물속에 떠 있는 것을 평소부터 충성심이 강했던 영월호장 엄홍도가 몰래 수습해 장릉 자리에 안장했다고 한다. 그가 장사 지내려 할 때 주위 사람들은 후환이 두렵다며 말렸다. 하지만 그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라며 단종의 시신을 홀로 밤에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엄홍도의 충절은 높이 인정되어 그의 자손에게 벼슬자리는 물론 추후에 공조참판이라는 벼슬도 내려졌다. 이런 예를 근거로 영월 사람들은 영월이 '충절의 고장'이라는 데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다. 또한 장릉은 향토 문화재가 거행되는 유일한 왕릉이다.
과학문화유산답사기1 | 이종호 | 북카라반
정자각 (丁字 모양)
영천 (장릉 서쪽의 우물)
배식단
배식단은 장릉(莊陵)의 정단과 별단에 배식한 268위의 제단이다. 단종이 복위된 이후, 1791년(정조 15)에 처음으로 정위 32인과 별단의 제위 198인을 지정하였다. 이 배식자 숫자는 그 후 순조 연간 이래 추가되어 268위로 증가하였다. 제사의 시일은 한식 때이며, 그 축문은 정조가 직접 지었다. 제단은 정단과 별단을 구분하였으며, 별단은 공로의 다소와 신분에 따라 셋으로 나누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느티나무 보호수
엄흥도 정여각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
단종의 시신이 청령포 물속에 떠 있는 것을
영월호장 엄홍도가 몰래 수습해 이곳 장릉에 안장,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비가 있는 곳

제 57회 단종문화제가 4월 26일~28일 열렸답니다.
장릉을 나와 청령포로 걸어갑니다.
영월 강변 저류지 수변공원
영월의 관문.
청령포 입구
전망대.
청령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입니다.
뒤쪽에 나루터가 있어요.
청령포.
3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이고, 나머지 면은 높은 벼랑이 있어서
나룻배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는 천연 감옥 같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뒤로 보이는 국지산(해발625m)능선, 왼쪽 끝이 KBS통신탑봉.
국지산 옆으로 100대 명산 영월 태화산(해발1027m) 이 자리합니다.
영월 서강은 앞에 보이는 굽이를 돌아 나가, 동강과 만나며 남한강을 이룹니다.
나룻배에서 내려 송림으로 들어갑니다.
청령포 입장료 성인 3천원
청령포 숲은 2004년 '아름다운 숲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답니다.
단종어소
2000년 4월 복원 (승정원 일기 참조)
관음송 {수령 600년 추정, 높이30m, 가슴높이 둘레 5.19m))
천연기념물 제 349 호.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며 둘로 갈라진 이 나무의 줄기에 걸터 앉아 시간을 보냈는데,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해서 '觀',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 해서 '音'
망향탑
어린 단종이 한양(혹은 정순왕후)을 그리워하며 쌓은 것이라 하는데, 어소는 소실되었지만,
유일하게 단종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랍니다.
청령포금표
단종 사후 단종으로 복위되고,
어소 주위 출입을 금한다는 비석 (영조 2년)
금표 기준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

나룻배는 42인승, 운행시간 3분여.
병꽃이 피는 계절.
빨간 건물은 운탄고도1330 통합안내센터,
가운데 보이는 산은 발산(해발674m), 그 오른쪽에 봉래산 머리끝이 보일듯 말듯 자리합니다.
'♧ 여행 이야기 >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람사르습지 대암산 용늪 (0) | 2024.05.20 |
---|---|
폭포로 영혼을 연다 / 홍천 백암산 가령폭포 (0) | 2024.05.13 |
강진 병영성축제 (2) | 2024.05.10 |
우두산 Y형 출렁다리 (0) | 2024.05.06 |
정선 인투라온 호텔 / 강원도여행 (0) | 2024.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