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학자인 명재(明齋) 윤증(1629-1714)의 집이다.
윤증의 본관은 파평,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유봉(酉峰)이며, 성혼(成渾)의 외중손으로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논쟁할 때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었다.
명재고택은 완만한 경사지에 있으며, 한옥의 규범을 충실히 따르는데,
집앞에 넓은 마당과 왼쪽에 정사각형 인공 연못이 있다. 현재 대문 역할을 하는 남쪽 중문으로 문간채가 이어지며
전체 구조는 ㅁ자 형이다. 안채는 높지 않은 기단 위에 있으며 가운데 마당을 둔 멀경(冂)자 형인데,
내외벽으로 가려진 폐쇄적인 공간이 명재의 절제된 미덕을 반영하는 듯 소박하다.
안채의 동쪽 뒤편에는 사당이 있고, 그 앞에는 사랑채가 있다.
현재의 건물은 수리하여 19세기 건축 양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축 기법은 18세기 양식이다.
또한 안채와 사랑채의 평면은 대체로 중부지방 양식을 따르면서도 특이하게 남도풍을 가미한 형태이다.
명재고택은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견실한 형태를 보이며, 보존 상태도 양호해 조선 시대 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회니시비(우암송시열의 회덕과, 명재윤증의이성<논산>)등, 역사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 곳입니다.
"회니시비"
윤증의 아버지(미촌 윤선거)가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 전 우암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생각을 넓게 가지라고 가르치듯이 썼고~,
윤선거의 아들 윤증이 부친의 묘갈명(墓碣銘)을 스승 우암에게 부탁했는데,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하지 않은 미촌의 이야기를 써줌으로 인해서
우암과 윤증의 사이는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고택 입구에 차단기를 해놓았어요
안채를 보수하는 공사를 하는 것 같아요.
전망대와 선비계단, 궐리사 등을 돌아보는 코스가 있는데
오늘 두개의 산을 다녀왔으니 생략합니다 ^^
앞쪽의 용도는 잘 모르겠고,
뒤는 작은도서관 '노서서재(魯西書齋)' 인데, 휴관 이라 써붙여있고요
궐리사 방향입니다.
왼쪽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오전에 올랐던 향적산입니다.
오른쪽 볼록한 곳은 탑산?
고택의 장독대
통도사 서운암의 장독대를 연상케하고~
독안에 내용물이 들어있는지 쓸데없이 궁금하기도 하고~
진사분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작품을 만들고 있더군요.
400살 먹은 느티나무가 장독대를 지키고 있네요
명재고택 간장은 묵은간장에 부어 만드는 되매기장으로 유명하다네요
고택 뒤편 사당.
니산(노성산) 방향의 노송림
노성향교
앞은 명륜전, 뒤 대성전은 보수공사가 한창입니다.
고택 담장 옆, 자그마한 이 비석의 용도는 뭘까요?
정면에서 바라본 고택의 모습
사랑채
왼쪽 현판에 이은시가(離隱時舍) ; 속세를 떠나 은거하면서 나아갈 때를 아는 집
한 분이 열심히 설명을 하시네요
문화해설사 이신가?
방지원도(方池圓島)형의 연못으로 건너면,
300년 수령의 배롱나무가 꽃을 만발하고 있어요.
노성향교 외삼문
이곳 역시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서
담장 너머로 안을 들여다 봤어요.
명륜당이 보이고, 오른쪽은 양현재(유생들의 기숙사) ?,
명륜당 뒤로 내삼문과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이 살짝 보일랑 말랑~
관리인이 머무는 모화당.
연못을 돌아 향교 입구로
향교입구 홍살문을 나와 주차장으로 회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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