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야기/전라도

역사 속의 슬픈 상처, 빨치산의 집결지였던 구수산 갓봉

눈꽃세상 2024. 5. 31. 15:26

 

2024년 5월 29일

구수산 갓봉 정상 (해발 344m)

 

 

 

 

오두재(해발 185m)까지 붕붕이를 델고 왔어요.

백수읍 천마저수지를 낀 임도를 타고 저 건너편에서 올라왔어요.

 

 

 

 

계절의 여왕 5월의 싱그러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백 가로수 우거진 임도를 따라 오두재로 올라갑니다.

 

 

 

 

임도 한가운데 웃자란 풀들이

붕붕이 바닥을 벅벅 긁어대고,

붕붕이 살갖에 온갖 사랑의 매를 들이대는 나뭇가지들.

붕붕이를 사랑하는 차주라면 절대 이곳에 들어오면 안됩니다.

 

 

 

반대편 수리봉은 정자 뒤편이 들머리,

갓봉까지는 500m로 표시되는데,

실제 램블러 거리는 1km 정도 거리입니다.

직등으로 오른다면 500m가 맞기도 하겠지만

현재는 길도 찾을 수 없고,

정상부근 암릉의 통과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데크계단을 올라 산길로 접어드는데,

그린실크로드 !

예초작업이 되어 있어, 그야말로 트래킹로드입니다.

(백수읍 관계자분들 고맙습니다.꾸~뻑)

 

 

 

 

우마차가 지나다닐 정도의 실크로드 숲 사이로,

지난 3월에 다녀왔던 길용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오른편 뒤로 옥녀봉도 나타납니다.

반갑다 반가워 ! 

왼편으로 상여봉 암봉도 잘 보이고요.

어느 블로그에서 상여봉이 코끼리 형상이라서 象如峰이라던데,

그렇게 생각하며 보니 코끼리가 누워있는 모습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喪輿峰으로 표기하는 듯 합니다.

 

 

 

 

당겨보니 더욱 그럴싸한 코끼리 모습.

 

 

 

 

 입석골마을과 길용저수지

하산 후 저기 보이는 마을길로 내려가려 합니다.

 

 

 

 

예초작업이 잘되어 있는 길가에 통행의 흔적이 희미한 곳 뒤쪽으로

습기찬 암벽이 보이는데,

직등코스일까?, 아니면 샘물이 있을까?

 

이제부터는 산 중턱을 횡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숲길이지만 경사진 좁은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만약 풀을 깍아놓지 않았다면,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조차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좁은 오솔길이 계속되고~

 

 

 

 

벌깨덩굴이 몇 개체 무리지어 피었어요.

 

 

 

 

예쁜 노루발꽃도 나타나고요.

 

 

 

작은 암릉 턱으로 조심조심 ~

 

 

 

 

백수우체국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합니다.

벤치 쉼터가 있고,

산길은 아주 좋아 보입니다.

이곳도 역시 예초작업이 잘 되어 있고요.

 

 

 

오른쪽은 지나온 숲길

왼쪽은 갓봉 오름길

이곳 합류지점부터,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고~

 

 

 

 

올라온 오두재 건너편에 수리봉(해발351m)의 모습이 보입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영광시가지도 보이고, 

그 뒤로 장암산(482m) 자락

 

 

 

 

침목계단길도 오르고~

 

 

 

 

촘촘히 깔린 침목계단

 

 

 

바위들도 보이고,

로프난간길로 이어집니다.

 

 

 

 

뒤돌아보니,

영광 최고봉 태청산도 시야에 들어옵니다.

 

 

 

 

올라올 때 정상처럼 보이던 곳을 지나,

완만한 오르내림을 거치고~

 

 

 

119 위치표지목을 두번째로 만나고요.

 

 

 

커다란 바위가 정면에 나타나고~

 

 

 

 

바위 사이로 로프난간길을 오르면 정상입니다.

 

 

 

구수산 갓봉 정상석 (해발 344m)

구수산에서 가장 높은 곳은 봉화령(해발380m)이고, 구수산(해발 339m) 이름을 가진 봉우리도 있지만,

대부분 갓봉을 구수산 정상으로 여기고,

램블러 앱도 이곳을 구수산 인증지로 표시합니다.

전에 생각없이 올랐던 구수산(339m)이었고,

램블어 인증 불발했었기에, 

오늘 두번째로 구수산 갓봉 산행을 하고 있지요.

 

 

 

 

올라온 반대편의 모재봉, 봉화령 방향

 

 

 

 

왜 갓봉인지 이해가 되는 정상부 모습입니다.

암봉이 갓처럼 볼록 솟아 있어요.

 

 

 

 

오두재 방향으로 바위 직벽입니다.

 

 

 

 

정상은 숲으로 둘러 쌓여 전혀 조망이 없고,

올라오기 전 바라본 커다란 바위로 올라

주변 조망이 가능합니다.

 

 

 

 

나무 사이로 백수 들녘이 조금 보이고,

 

 

 

 

3월 27일  올랐던 구수산(339m)을 찾아봅니다.

왼편으로 임도가 보이고, 

산자락이 만나는 곳에 붕붕이를 묶어두고 아주 짧은 산행을 했었지요.

 

 

 

 

구수산에서 이어지는 설레바위봉과 상여봉.

 

 

 

오두재 건너편 수리봉 정상부.

 

 

 

 

영광 최고봉 태청산(해발593m)과 장암산, 영광시가지

저기 장암산 산줄기가 여기까지 이어지는 장암지맥입니다.

 

 

 

 

불갑산 방향인데, 정확하게 구별되지 않고요.

 

 

 

 

바위조망처에서 내려다 본 올라온 길입니다.

정상이 이렇게 암봉으로 솟아 있으니, 미처 지리산으로 합류하지 못한 빨치산들이

가장 오랬동안 여기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주 슬픈 역사의 기록 중 일부를 찾아봤는데~

 

좌익의 靈光 대학살(2만1225명) 실태 보고

월간조선 2002년 4월 호

 '갓봉과 수리봉'
   백수면 구수산에는 갓봉(344m)과 수리봉(351m)이 있다. 갓봉은 빨치산 본부가 있던 곳이고, 수리봉은 대한민국 軍警이 빨치산 토벌 전진기지로 사용하던 곳이다. 갓봉과 수리봉은 직선거리로 2㎞ 떨어져 있다. 두 봉우리 사이에는 입석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彼我(피아) 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한씨의 고향 천정리는 입석골 골짜기에서 3㎞쯤 내려오는 곳에 위치해 있다. 경찰이 갓봉에 있는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천정리를 지나야 했다.
  
   1950년 11월경에 벌어진 일이다. 빨치산 토벌 작전에 나섰던 경찰병력이 천정리에 들어왔다. 경찰은 갓봉에 있는 빨치산 토벌에 애를 먹고 있었다. 산의 높이는 낮지만 깎아지른 듯한 절벽 등으로 둘러싸인 갓봉을 정복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도 경찰은 빨치산 토벌에 나섰다.
  
   한씨는 빨치산과 전투를 하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천정리에 들어온 경찰이 빨치산과 내통한 사람들에 대한 색출작업을 벌인 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경찰들이 그날 빨치산과 내통했다며 어린아이 두 명을 포함해 일곱 명의 천정리 사람들을 총살시키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씨가 지금도 안타까워하는 것은 갓난아이의 죽음이다. 빨치산인 남편을 대신해서 끌려나온 한 여인의 등에는 아기가 업혀 있었다. 경찰은 여인을 향해서 총을 발사했고, 여인을 관통한 총알은 등에 업혀 있던 아이까지 관통했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에구… 쯧쯧』
  
   말을 마친 한씨는 52년 전 벌어졌던 그 사건이 바로 당장 목전에서 벌어진 일인양 안타까워하며 혀를 찼다. 한참 혀를 차던 한씨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공산당이 더 나쁜 짓을 많이 했어. 잘못 걸리면 온 가족을 전부 죽였으니까. 운이 있으면 살고 운 없으면 죽고, 그 사람들 기분 내키는 대로 죽이고 살리고 했어』
  
   현재 백수면 길용리에 사는 전계선(62)씨도 경찰에게 아버지를 잃었다. 「밤손님」(영광 사람들은 빨치산을 밤손님이라고 불렀다)에게 밥을 주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전씨의 나이는 만 10세였다. 당시에도 그는 백수면에 살았다. 경찰에게 아버지를 잃었음에도 전씨는 좌익에 대한 적개심이 더 강해 보였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한 죽음에 대한 목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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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을 가면 경찰의 앞잡이로 몰려서 가족들을 죽일 텐데 도망을 갈 수 있겠습니까. 당시 우리 백수면 사람들은 피란을 가면 밤손님들한테 반동으로 몰리고, 피란을 안 가면 경찰들에게 빨치산 앞잡이로 몰리던 상황이었어요. 운명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6·25를 겪은 영광 사람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가 있다. 「숙청」이라는 말과 빨치산을 지칭하는 「밤손님」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특히 지금은 북한 관련 보도에서나 들을 수 있는 「숙청」이라는 말을, 그들은 일상 용어처럼 사용했다. 강한 자극을 받은 언어는 오래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영광 사람들이 말하는 「숙청」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6·25 전쟁 중 영광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영광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의 특징은 대상자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일가 친척을 모두 학살했다는 점이다.
  
무기가 없으니까 죽창이나 칼로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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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암봉에서 내려서고,

완만한 숲길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박쥐나무

 

 

 

 

구수산과 길용저수지가 조망되는 곳에서 ~

 

 

 

 

하산길 로프난간 옆으로 바위 조망처가 있고,

 

 

 

 

수리봉과 ,오두재 임도가 숲사이로 보입니다.

 

 

 

정상 암봉에서 보이지 않았던 동남쪽 방향으로 시야가 트입니다.

산골짜기 아래 천마저수지가 보이고, 

그림 중앙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 뒤로 불갑산이 자리합니다.

 

 

 

 

천마저수지.

오른쪽 능선에 백수우체국에서 오르는 등로가 있지요

 

 

 

 

백수풍력발전의 풍차들도 일부 보이네요.

 

 

 

 

내려서며 뒤돌아보고~

 

 

 

 

오두재 갈림길로 내려왔어요.

여기서 다시 좌측으로~

 

 

 

 

오솔길 옆으로 바위채송화 노란꽃이 만발했어요.

 

 

 

 

오두재 정자 옆 나무에 

장암지맥 오두재 표지가 붙어 있네요.

 

 

 

 

수리봉 들머리.

여기도 예초작업이 잘 되어 있어요.

수리봉에 오르기는 일정이 원만하지 않아 생략하고,

천마저수지 방향보다 임도길이 더 좋아보이는 길용제 방향으로 탈출합니다.